제국의 시대

2022. 10. 30. 05:55창작

  천일의 앤 Ost - You Tube

         

                                                                          16 C 초 유럽

 

16C 초  스페인은

'카를로스' 5세의 통치 하에 있었는데, 그는 당시  유럽의 대부분을  그의 지배 하에 두었던 절대적 권력자 였다. 당시 '이베리아'반도의 스페인은 '카스티유'와 '아라곤'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카스티유' 통치자는 '카를로스' 5세의 어머니 '호안 나' 여왕이였으며  '아라곤'은 그의 조부였던 '페르디난트'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카를로스' 5세는 부모로 부터는 스페인을, 조부모로 부터는 신성로마제국을, 두지역의 통치권을 모두 이양받아  명실공히 통합된 스페인의 초대 국왕이 된다. (1555년) . 그래서 '카를로스' 1세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사촌 간인 포르투칼의 '루앙' 3세의 누이 '이사벨라'와 결혼하여 40여 년간을  황제로서  중, 서, 남부유럽과  아시아의 필리핀(카를로스 2세인  필리페를 기념하여 칭했다 함)제도의 '카스티아'식민지 그리고 신대륙 '아메리카' 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게 된다.

 

부와 권력의 세습을 위해 그때나 지금이나 정략적 결혼이란 연줄로 그들만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고들  하였는지 ..

 

                                                                 밀베르크전투에서 카를로스 5세

'카를로스' 외조부는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2세로서, 그의 외할머니인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와 정략적 결혼을 통해 분리되였던  '아라곤'과 '카스티아'를 연합하게 하여  스페인이란 통일된 단일국가가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들 사이의 태어난 '캐서린' 공주는 영국 '핸리' 8세의  첫 왕비이자 '핸리' 8세의 뒤를이은 '메리'여왕의 어머니 였다. 

아마도 예전에 '1000 일의  앤'이라는 영화를 개봉관이나 아니면 TV 명화 프로그램  혹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대여한 것을 본 기억이 있으리라 본다.

  

옆으로 비스듬히 눌러쓴 깃털 달린 모자, 구레나릇 수염에 멋진 건장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늘 푸른 장원에서  사냥개 무리들과 함께 휘달리는 멋진 그림에 있는 그가 바로 '리차드 버튼'이라는 영국의 유명한 배우이며 한 때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태일러'의 남편이기도 했던 명 배우로   '핸리' 8세의 분신으로 나온다.

 

                                                                핸리 8세와 앤 블린  초상화

                                                                  

 '핸리' 8세는 슬하에 첫째 부인인 스페인의 '캐서린' 왕비와의 사이에 큰 딸 '메리'공주,  情婦의 자매인  '앤 불린'에게서 둘째 딸  '엘리자베스',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아들 '에드워드' 6세를 세번째 부인에게서 얻었는데,  그 귀한 아들은 너무나  병약하여 9 살에  왕위에 오르지만 자즌 병 치례로 16 세에  사망한다.(핸리 8세의 문란한 성 생활로 인한 매독 등 질병에 의한 유전성 질병이란 설로 알려지기도 한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6세 이다.

왕위는 우연곡절 끝에  '핸리' 8세와 스페인 '캐서린' 공주와의 사이에 태어난 첫재 딸 '메리튜터'(메리1세) 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캐서린 왕비

 

그녀의 부친

'핸리' 8세는 자신의 두번째 결혼을 위해 이혼을 금지하는 가톨릭을 박해하고, 영국 국교회를 신봉하며 가톨릭과는 요원한 관계였는데, 애섧게도 '메리'는 철저한 가톨릭국가인  스페인의 왕녀의  핏줄이였던지라 그의 부친과 그렇게 요원하던 가톨릭교로 돌아가게된다.

 

  '메리'여왕의 어머니 '캐서린'은 '헨리' 8세의 형이였던 '헨리' 7세와 먼저 결혼하였으나, 그가 첫 날밤도 못치르고 사망하자 또다시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되어 '핸리' 8세와 재혼하게 되는데 그들사이에는 6명의 자녀를 두지만 왜 그리도 자주 신이 데려가는지 .. 유일한 딸 '메리튜터'만 남게 된다.

 

'핸리' 8세는 아들을 못 낳는 '캐서린' 왕비와는 점차 멀어져 가며  '캐서린'의 시녀이자 '핸리' 8세의 정부였던 '메리 불린'과의 자매인  '앤 불린'과 사랑에 빠져 '캐서린' 왕비를  멀리한다. 그리고 그는 바라던 왕자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당시 이혼을 금지하는 가톨릭의 반대에도 무릅쓰고(캐서린 친정 강국 스패인과 로마교황에 대한 입김도 작용했다고 함.) 수장령까지 발표하면서 까지 개혁을 통해 '캐서린'과의 이혼을 관철시키게 된다. 한 여인을 얻기 위해 국교까지 바꾸어 버리려는..

절대 군주이였기에 가능했는지....

 

                                                 핸리 8세 와 앤블린(영화 1000일에 앤 중에서)     

                                                                                                         

 '핸리' 에게는 6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그녀들 중 2 명의 여인을 단두대의 이슬로 보낸다. 첫번째 부인은 바로 '메리'여왕의 어머니 '스페인'의 공주 '캐서린' 왕비였고 아들을 못낳는 이유로 왕비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 불명예를 안고 사라진다.

 

두번째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 '캐서린' 왕비의 시녀 '메리 블린'의 자매인 '앤 블린'이다. 그녀들은 '토마스 볼턴'경의  자녀로써 그의 야심인지 그때 풍속이 그랬는지 하여간 궁전의 시녀로 들어가 기구한  왕과의 인연으로 얽히게 된다.

 

                                                      앤 블린 처형 그림과 앤 블린 생전 초상

                                                                      

왕의 환심을

산 '앤 불린'은 무척이나 당찬 여인이였던 것 같다. 요새 말하면  왕비로써  야심찬 훗날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당시 왕의 한마디에 목이 덜렁 덜렁 나가 떨어지는 그런 시대 였는데 ....

그녀의 미모인지 당당함인지 몰라도 '핸리' 왕은 첫 부인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궁에서 내쫓게 된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뜻데로 되지 않고 순리대로 굴러가는지 ..  대문 앞에 달려는 고추는 한숨과 함께 자꾸 쌓여만 가는데  대체 무슨 죄가 있길래 자꾸만 자꾸만 어린생명을 데려 가는지.. 지쳤는지 바람기가 발동했는지  왕의 눈길은 눈 웃음치는 여인들의  교태로 돌아서 가고 있었다.. 주위에 꽃이란 꽃은 다 피여 있었으니 ...

 

아들을 얻기 위해 한나라의 국교까지 갈아치우며 얻은 여인에게서 왕은 더 이상 기대 할것이 없었나 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아가 뚜렸했던 여인.. 차라리 왕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사랑했던 사람과 여생을 편히 살아갔을 텐데..

 

왕은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였고  아름다운 자신의 여식을 낳아주었기에 ..그녀에게 왕비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랑스런 딸과 먼 곳에 가서  여생을 편히 살아가라고  권유도 하지만.. 그녀는 다가올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3 살박이 딸 '엘리자베스'의 앞날을 생각하며..

하늘에 반짝이는 별 만큼 수 많은 번뇌와 슬픔 속에 헤메였으리라..

 

                                                              펠리페 2세(1527~1598) 스페인국왕

 

그녀의 선택은

한갓 왕의 정부로서  살아가느니 훗날 딸 '엘리자베스'의 머리에 찬란한 왕관을 선택하고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진다. '엘'공주가 3 살이 되어 아장 아장 거닐 때. 그 모습을 마음에, 머리끝에 까지 새겨 멀고 먼 하늘나라에서도  잊지 않으려고 꼭꼭 간직한 채..

늘 푸른 장원을 달리며 사냥하던  '핸리' 8세가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는 새무리를 무심히  바라본다.

 

 

단두대에 서서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쳐다보며 곁에있던  성직자에게

 

 

 '오월 이군요'

 .......

 

'여기에 전에 왔을 때

나를 위한 축제가 열렸었어요.'

.......

 

'많이 아플까요!'

 

'하긴 괜찮을 꺼에요.'

'나는 목이 가느니까.'

 

...........

 

 그녀가 참수되던 날 하늘은 왜 그다지도 시리도록  맑았는지...

 그래서  슭프도록 너무 시려 '앤 불루'가 되었는지...

 

 

한 때는  제국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인  '앤 불린'의 머리가 단두대  아래  굴망태아래로 떨어져  나갈 때,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  비둘기  떼를  바라보며 절대군주이며  천하의 바람둥이였던  '핸리' 8세는 장원의 짙게 깔린 안갯속으로 사라져간다.

 

못 이룬 한을 자신의 분신에게 이루려는 무서운 여인의  집착으로,  죽움에도 굴하지 않고 그녀의 외동딸 '엘리자베스'를 제국의 여왕에 올려놓고 육신이 사라지는 그녀야 말로  진정한 승리자가 아니었는지 ...

 

 

                                                                메리여왕(Mery1세 : 1516~1558)

 

'핸리' 8세 사망 후

그의 외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위에 즉위하나 이런 저런 잦은 병치레로  16살에 단명에 가고, 이복동생  '에드워드' 6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핸리' 8세의 장녀  '메리'(메리 1세)여왕(스페인 '케서린'공주의 딸)은  그 이듬해 '카를로스' 스페인 왕의 외아들 '펠리페' 2세와  결혼하게 된다.

당시 9살이나 연하인 '펠리페' 2세  왕자와의 결혼은 영국 국민을 실망시키는데 ,가톨릭교도인 이국의 왕족과의 결혼을 우려하였으나 가톨릭 세력의 지원 아래 결혼은 성사되고 만다.

성장기에 고난을 겪었던 '메리'여왕은 진정으로 '펠리페' 2세를 진정으로 사랑했으나 '펠리페' 2세는 신교가 지배하는 영국을 가톨릭 세력권으로 끌어드리려는 정략결혼일 뿐 이였다.

 

 그는 4번의 결혼을 하였으나 모두가 요절하고 '메리'여왕과는 2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자녀를 갖지못하는 것을 알고는  멀어져 간다.  '메리'여왕 사망 후 그는 프랑스 공주 '엘리자베트'와 결혼하는데, 이 여인은 '펠리페' 2세의 첫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돈 카를로스'왕자의 신부감이였다하니.. 며느리 될 여인을 왕비로 맞게 된 셈이다.   

 

 

'메리'여왕은

재임(1553~1558) 중에는 국민들로부터 종교 문제로  많은 사람들을 처형하여 피의 '메리'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그녀는 독실한 가톨릭신자였기 때문에 이교도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녀가 5 년간 왕위에 있다 병사하자 그 뒤를  이어  변방에서 오랫동안  단지 피붙이라는 연줄로 죽음의 칼날을 피해왔던 10년 아래 이복 여동생이 왕위에 올라 그 찬란한 제국의 여왕이 되는데 그녀가 바로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다.

 

 '메리'여왕은 계모인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앤 불린'의 학대로 시련을 겪어,  왕위에 오른 뒤에는 이복동생 '엘리자베스'에게 분풀이라도 하듯 학대하였다. 재임 중에는 자신을 무시했던 신교와 영국국교회를 탄압하며 피의 숙청으로 떨게하였으나,

 

 

병들어 눈 감을 때는..

 

그녀가 그렇케 시기하며 미워하던  '엘리자베스'에게 

제국의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래도 미움 속에 진정한 사랑도 있었나 봅니다.

 

  

익명의 예술가가 그린  꾸밈없는 엘리자베스 1세(1546년 경)    

 

                                                                    정장한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여왕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 간다. 주위에 청혼이 오면 나는 제국과 결혼했다며..

무질서했던 아비의 사생활. 아른 아른거리는 생모와의 추억,  유폐되어 고독하고 쓰라린 어린 시절의 영향들이..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하였는지...

 

'엘' 여왕은 25살에 왕위에 올라 16C 초 당시 유럽에서 후진국이였던   '잉글랜드'를  탄탄한 기반위에 올려 놓고 '스콧틀랜드'의 왕(부왕인 '핸리' 8세의 누이의 딸인 '메리'왕녀의 아들 : '메리'왕녀는 핸리 8세 의 딸 '메리'여왕과는 다른 인물로 스콧틀란드에서 은거하다 반역죄에 걸려 참수됨.) 제임스 6세(스콧틀랜드왕이며 잉글랜드왕으로 통일 '슈튜어트'왕조를 열게 되어 '제임스'1세라고도 함.)를  후계자로 삼고 눈을 감았는데, 그 이후로  '스콧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하나로 통합된  찬란한 '스튜어트'왕조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잉글랜드 함대와 스패인 무적함대 아르미다가 충돌한 해전 상상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여왕과 스페인 '펠리페' 2세(잉글랜드 '메리'1세 여왕의 부군이였던) 스페인국왕과의  양국과의 충돌은 스페인령 네델란드에 대한 잉글랜드의 지원에 대한 차단과  신대륙의 교역권 확보를 위해 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미다'의 공격으로 시작된다.

 

스페인 왕립 해군

소속 무장 함선 22척, 무장상선 108척, 전투병력 18,000 명과,지원 최정예 병력 16,000 명이 가세한 전투에서 잉글랜드는 경전함 200 여척과 100 여척의 무장 상선 으로 대항하는데 두나라 전력은 비슷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전함은 신대륙 개척을 위한 대양 항해로 주로 대형 선박으로 구성된데, 반해 잉글랜드 함선은 해양에서 스페인의 보물 함선들을  치고 빠지는 경 함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잉글랜드 부근의 수심 얕은 바닷가의 전투에서는 잉글랜드 함선의 기동성이 유리하였는데, 스페인의 그 당시 전투방식은 중무장한 전투함으로 상대함에 충돌시켜 갑판 위에 올라 백병전의 전투양식이였으나, 잉글랜드 전투방식은 근거리에서 함포사격으로 전투하는 방식이였다.   

 

잉글랜드 부근의 옅은 해역에서 전투가 불리해서인지 스페인 함대는 좀더 수심 깊은 해역으로 이동해 함선들의 밀집 대형의 전술로 임하는데, 잉글랜드는 부근의 지리적 이점과 익숙한 풍향을 이용한 화공(fire ship)으로 스페인 함대를 분산시켜  피해를 준다.

 

스페인 함대는 큰 피해를 입고  아일랜드(당시 아일랜드는 가톨릭 국가로써 스페인과 우방이였음) 부근 해역으로 후퇴로를 잡아 이동 중  아일랜드 해역의 고질적인 험난한 폭풍우를 만나 적군과의 전투에서 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스페인 고국에 다달았을 때는 수십 척의 함선과  얼마 안되는 부상한 병력으로 초라하게 귀국하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잉글랜드왕국은 이 전투를 시작으로 차츰 차츰 해양제국으로 발 도움하고 스페인 왕국은 석양에 지는 해 처럼 서서히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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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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